[신간안내]존재와 관계를 묻는 서정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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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윤태민 기자
  • 입력 2025.11.2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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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행득 시인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시간’

 

차행득 지음/시와사람 펴냄.

전남문인협회 편집국장을 역임한 차행득 시인이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시간(시와사람)’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삶의 감각을 극도로 낮춘 언어로 존재의 미묘함을 길어올리는 시인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전통적 서정을 잇고, 지금의 서정이 무엇인지 되묻는 시적 기록이다.

저자 차 시인은 월간 ‘詩 시 see’ 추천시인상 당선 이후 2020년 ‘시와사람’을 통해 재등단했다. 국제PEN문학광주 작품상 등을 수상하고 ‘그 남자의 국화빵’을 비롯해 다수의 저서를 펴냈다.
 

차행득 시인.

신작에서는 ‘말’이라는 존재의 감각을 탐구하는 시편부터 여성·가족사를 다룬 서정적 작품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내면을 구성해온 세계와 존재의 결을 깊고도 담백한 언어로 펼쳐 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시인이 지속적으로 몰두해온 ‘말’에 대한 탐구다. 말의 미묘한 결을 더듬어 정신성과 지향의 세계를 읽어내고 존재를 규명하는 도구로 삼는 과정에서 시인은 욕망을 비워내려는 태도와 성찰의 긴장을 동시에 드러낸다.

시집은 ‘그녀 혹은 그녀 앞의’, ‘살가시에 찔리다’, ‘공손한 시간’, ‘안드렁물 후렴구’ 등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고가구’, ‘공손한 시간’, ‘비자나무 숲에서’ 등 일상의 사물과 풍경을 통해 세계의 층위를 더듬는 작품들이 다수 수록됐다.

실존의 한계를 직면하면서도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의 목소리도 시집 곳곳에 묻어난다. 또한 여성으로서의 타자성을 드러낸 시편들이 적지 않다.

여성 의식과 세계 경험의 결을 통해 남성과 여성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인식의 간극을 드러내며, 후기 근대적 풍경을 미학적으로 포착한다.

이러한 시편들은 단순한 정서 표현을 넘어 현재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구조적 감정의 곡률을 조용히 비추는 지점이기도 하다.

유년과 가족의 기억을 다룬 작품도 시집의 중심을 이룬다. 오빠와 언니, 부모에게서 비롯된 감정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시편들은 대체로 슬픔의 정조가 짙지만, 연민을 품은 시적 태도 덕분에 고백은 곧 위로의 결로 전환된다.

특히 ‘누룽지 인생’에서는 언니의 삶을 "밑바닥에서 파삭거리며 뜨겁게 버텨야 했던 시간"으로 그리면서도 삶의 맛과 질감을 ‘누룽지’라는 은유로 다시 긍정하는 장면은 특유의 따뜻한 시선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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