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부터 계몽의 길까지… 전남 보성이 품은 시간 여행

산자락부터 계몽의 길까지… 전남 보성이 품은 시간 여행

  • 기자명 윤태민 기자
  • 입력 2025.11.2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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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역사·사색 흐르는 숨은 매력
산사에 스미는 늦가을 고즈넉한 휴식
티벳문화 머무는 특별한 문화 체험
근대 계몽 정신 서린 독립 정신의 터
이순신 결단 품은 호국의 누각 풍경

 

서재필 기념 공원에 세워진 독립문.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늦가을 정취가 깊어지는 11월, 전남 보성은 자연과 역사가 고요하게 스며든 ‘정신의 길’로 여행객을 불러 모은다. 천년 고찰 대원사와 영적 문화공간인 대원사 티벳박물관, 근대 계몽과 독립운동의 상징 송재 서재필 기념공원, 그리고 정유재란의 결단을 품은 열선루까지. 단풍이 물들어 떨어지는 풍경 속에서 사찰·정신문화·독립운동·호국의 흔적이 어우러져 사색과 배움이 함께하는 보성의 숨은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천봉산 자락에 자리한 대원사. /보성군 제공

◇봉황이 인도한 산사, 천년고찰 대원사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 천봉산 자락에 자리한 대원사는 늦가을이 되면 더욱 깊어진다. 절집 주변을 감싸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 군락이 노랑·빨강의 색감을 입히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띠운다. 오래된 기와 위로 낙엽이 천천히 내려앉고, 산사의 고요한 공기 속에 범종 소리가 울릴 때면 자연과 시간이 한데 이어지는 듯한 감흥을 준다.
 

‘우리는 한꽃’이라 새겨진 대원사 한꽃문.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대원사는 백제 무령왕 3년(503년)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아도화상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경상북도 선산군에서 불법을 전파하던 아도화상이 봉황의 인도를 받아 호남 땅으로 와 봉소형국의 산세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대원사를 세웠다는 창건 설화가 남아 있다. 천봉산(해발 609m)은 보성·화순·순천의 경계를 이루며 예로부터 영산으로 꼽혀왔다.

절 안에는 ‘김지장박물관’이 자리해 중국 구화산에서 지장보살로 화현한 김지장왕보살을 기리는 유물과 기록을 전시한다. 현장 스님이 구화산에서 금지차 씨앗을 들여와 다시 대원사 주변에 심은 이야기는 이 사찰만의 특별한 역사성을 더한다.

특히 1980년에 조성된 대원사 벚꽃길은 늦가을에도 운치를 잃지 않는다. 잎이 지고 난 뒤 드러나는 고목의 선들이 산사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천봉산 골짜기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은 사찰 방문객에게 조용한 산책의 시간을 선사한다.
 

대원사티벳박물관 전경.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작은 티벳을 품은 대원사 티벳박물관

대원사 경내의 티벳박물관은 한국과 티벳 불교의 교류를 상징한다. 현장 스님이 1987년 인도 라닥에서 달라이라마를 만난 인연으로 티벳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20여 년간 1천여 점의 유물을 모아 박물관을 설립했다.

이곳은 물질 만능주의에 젖어들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정신문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장소로 꼽힌다.
 

티베트 불탑인 수미광명탑(왼쪽)과 대원사티벳박물관.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건물은 티벳 사원 형식으로 지어져, 보성의 산사 풍경과 어우러지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향 냄새가 은은하게 흐르고 불상·의식구·만다라의 강렬한 색감이 공간을 채우며, 마치 보성 속에 자리 잡은 ‘작은 티벳’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지상 2층·지하 1층 규모의 박물관에는 티벳 불교의 정신문화와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돼 있다. 대원사 산사순례·템플스테이 참가자에게 무료로 개방돼 있으며, 자연과 명상, 종교문화가 만나는 영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티베트식 수미광명탑.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박물관 앞에는 15m 높이의 티벳식 불탑 ‘수미광명탑’이 세워져 있다. 박물관 개관을 축하하는 달라이 라마의 메시지와 티베트와 네팔에서 보내온 부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탑 내부에는 티베트 왕궁 화가가 그린 벽화와 만다라가, 외부에는 네팔에서 제작된 마니보륜 108개가 모셔져 있다.
 

서재필기념공원 전경.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 독립정신을 품은 곳, 송재 서재필 기념공원

보성 문덕면에 위치한 송재 서재필 생가와 기념공원은 근대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이끈 서재필 선생의 얼을 기리는 장소다.

만 20세 나이로 갑신정변 주역 중의 한 사람이었던 서재필은 최초의 민간 대중신문이자 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을 제작하고 독립협회를 결성해 국민계몽과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송재 서재필 동상.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그의 생전 위업을 기리고자 1992년 기념 사업을 시작해 생가 인근에 사당 건립, 송재로 개설, 독립문을 건립 했고 조각 공원과 유물 전시관, 그리고 생가 등이 복원되면서 기념공원이 됐다.
 

지난 9월 제막한 대원 김중채 선생 흉상.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유물 전시관에는 서재필의 생전의 유품 800여 점을 전시하고 있으며, 일대에는 서재필 동상과 독립문이 세워져 있다.

최근에는 보성 출신 향토 문화계 원로 김중채 선생의 흉상도 추가되며 역사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더욱 깊어졌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조선 조정의 파군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 정전(戰船)을 규합해 명량해전에 나아갈 결단을 굳힌 장소인 열선루. /보성군 제공

◇ 정유재란 결단의 현장, 열선루

열선루는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조선 조정의 파군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 정전(戰船)을 규합해 명량해전에 나아갈 결단을 굳힌 장소로 알려져 있다.

원래의 열선루는 15세기 초 축성된 누각으로 추정되며, 전란으로 소실된 뒤 1610년 보성군수 이직과 지역민의 힘으로 재건돼 오래도록 ‘열선정’이라 불렸다.

일제강점기 성곽 철거로 사라졌던 열선루는 2009년 보성초등학교 신축 공사 중 초석이 발견되며 복원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후 새롭게 중건된 열선루는 정면 5칸·측면 4칸 규모로 진주 촉석루·울산 태화루와 유사한 조선 중기 대형 누각의 형식을 따른다.
 

열선루 전경. /보성군 제공

우물마루와 팔작지붕, 겹처마 등 전통 건축의 멋을 살렸으며, 누각에 오르면 늦가을 바람이 시원하게 스쳐가고 보성 들녘과 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용한 누각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장군의 결단이 깃든 공간이라는 사실이 한층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열선루 주변에는 호국전시관·잔디광장·전망 휴게공간·산책로 등이 정비돼 있어 늦가을 산책을 즐기며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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