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이 개관 10주년을 맞은 가운데, 지역 전문가와 시민사회는 "우여곡절 속에서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지만, 이제는 ‘무엇을 더 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제대로 할 것인가’를 묻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향후 과제를 제시했다.
특히 아시아 창·제작 네트워크 강화와 함께 시민 체감도 제고, 옛 전남도청 복원 공간과의 연계, 5·18 민주화운동과의 정체성 재정립, 지역 협력 구조의 재정비 등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정성구 UCL도시콘텐츠연구소 대표는 ACC의 지난 10년을 "이제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평가했다. 그는 "초기에는 ACC를 전담하는 시민단체가 생길 정도로 기대와 요구가 과도했지만, 지금은 어린이문화원과 흥미로운 전시, 아시아 아카이빙 작업 등 전당이 해야 할 일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며 "도심권 청년과 시민들에게는 다양한 경험을 하는 장소, 모이는 장소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고 말했다.
다만 정 대표는 "전당이 가진 중요한 자산이 10가지라면, 강하게 어필되는 건 두세 개에 그친다"며 "실제 전시·공연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고도 ‘전당은 벽이 높다’는 인식이 굳어져 있는 게 아쉽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당이 시민 참여 기회를 더욱 넓히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광주가 아시아 문화 담론을 생산·발산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며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정책과 ACC의 국제 네트워크를 따로 움직이기보다,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과 ACC가 채널을 공유하며 광주의 창의도시 역량을 축적해 나가는 그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와 함께 관광객을 위한 소규모 상설 공연, ACC·광주를 소개하는 영상 콘텐츠 상시 상영 등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김기곤 광주발전연구원 부원장은 지난 10년 간의 ACC의 활동을 "양적 지표를 넘어 질적으로 점검할 시점이다"고 말했다.
그는 "ACC가 10년간 창·제작, 국제교류, 연구,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 문화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확장해왔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해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국제적 네트워크를 넓혀온 과정 자체가 향후 평가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 부원장은 "ACC가 본래 기능에 맞게 현재까지 많은 사업을 수행해온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이제는 국가적·국제적·지역적 차원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성과로 전환됐는지, 시민의 문화적 권리와 향유권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높였는지를 점검해야 한다"고 짚었다.
또 "축적된 콘텐츠·네트워크를 기반으로, ACC가 아시아 문화예술의 허브로 도약할 가능성과 잠재력이 충분하다"면서 "이제는 그 성과들을 지역사회와 더 깊게 연결하는 후속 단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부원장은 "문화전당과 재단의 역할과 기능 체계를 점검해 창·제작과 유통이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하고, 옛 전남도청 민주평화교류원의 운영 주체와 관리 체계도 명확히 해야 한다"며 "국립기관으로서 국가와 지역이 어떤 방향과 목표로 협력할 것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세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민사회는 ACC의 아시아 정체성과 5·18 역사성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를 핵심 과제로 짚었다. 기우식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은 "ACC가 아시아 문화의 아름다움과 특수성을 꾸준히 소개해왔고, 세계적 수준의 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 또는 저렴하게 시민에게 개방해온 것은 분명한 성과다"면서도 "광주가 말하는 아시아 문화의 핵심 의미는 결국 1980년 5월과 맞닿을 수밖에 없는데, 5·18과 연계된 기획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기 사무처장은 "한 도시가 문화도시로 인정받으려면 ‘직접 생산되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며 "지역 예술인에게 창작과 연계된 기회를 제공하고, 시민이 공간과 프로그램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약했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특히 "5·18 주간에 ACC가 5월 행사위원회 등과 긴밀히 협업해 5·18의 가치와 맞닿은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함께 만든다면, 5월의 상징성과 아시아 담론이 함께 풍부해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옛 전남도청 복원과 관련해서는 "운영 주체가 어디가 되든, 옛 도청 복원을 계기로 ACC가 5월의 정체성을 더 뚜렷하게 품고 저항의 역사·문화를 세계적 콘텐츠로 만들어갈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정적 제도·거버넌스 개선 요구도 이어졌다. 기 사무처장은 "국가 기관인 ACC는 지방정부와 시민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구조적으로 제한돼 있다"며 "지역에 있지만 지역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기관이 돼선 안 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ACC가 어떤 정체성을 공유할지 명확히 설정하고, 지방정부와의 협업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